‘절대로 배반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고 싶은가? 그렇다면 책과 사귀어라!’ (데발로)
나에게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친구는 ‘책’입니다. 책이 친구라니 우스울 수 있겠지만 나에게 정말 좋은 친구죠. 이 친구는 말은 많지만 언제나 밉지 않게 말을 해서 좋아요. 내가 수긍하고 받아들이도록 목소리 톤과 색깔도 그때그때마다 달리해서 말을 하죠. 정말 센스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를 가든지 이런 친구들이 있는 곳을 찾게 되고 그곳이 좋아요. 북 카페가 좋은 이유도, 도서관을 자주 찾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생활공간에 책이 없다면 작게라도 친구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정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책이 좋은 친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아는 정도 수준에 지나지 않았어요. 어쩌다 만나면 어색했고 그의 말은 딱딱했어요. 그런 사이였던 우리에게 갑자기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죠. 내가 직장 일에 몰두해서 진급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두 아들의 사춘기 쓰나미가 몰려오고 말았어요. 나의 계획된 항해는 거친 풍랑에 심하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눈만 뜨면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던 그때 조용히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책’이었습니다.
그때야말로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 고민을 100% 털어놓을 수 없었어요. 자존심 때문이었을까요? 인생의 암흑기였습니다.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죠.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Ctrl+Z라고 답변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화재가 되었듯이 나의 암흑기도 Ctrl+Z 하고 싶은 마음이죠. 친구도, 전문상담가들도 내 고민 앞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오직 내 곁에서 힘을 주고 길을 알려 준 것은 ‘책’이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내가 살기 위해, 아니 버티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일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무턱대고 읽었죠. 물론 책도 내 문제를 속시원히 해결해 주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위로해 주었으며 기댈 수 있는 벽으로써는 충분했죠. 무엇보다 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어요. 지치고 힘든 여정에 아무 말 없이 동행해 준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이동과 만남이 제한되자 책은 절친이 되었어요. 그때부터 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었죠. 책이라는 친구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았고, 내 마음에 그 어떤 상처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이 좋아요.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책이 내 인생의 한 켠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죠.
처음 책을 집중적으로 읽을 때는 아이들의 사춘기 관련 책들이 전부였어요. ‘중2혁명’, ‘10대 마음 보고서’, ‘사춘기 대화법’. ‘사춘기 연착륙 프로젝트’. ‘엄마 반성문’, ‘사춘기 쇼크’, ‘부모 공부’, ‘이기적인 아이 항복하는 부모’, ‘아이들이 왜 이러지? 사춘기 아이들과는 어떻게 대화하지?’ 10대들에 대한 질문 덩어리로 내 머릿속은 꽉 차 있었습니다.
5년 정도의 치열한 ‘생존 독서’는 청소년지도사 자격 획득이라는 결과물을 낳았어요. 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우다 보니 자격증 과정까지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책이 또 다른 길을 열어준 셈이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생존 독서를 계속하면서 ‘성장 독서’를 하게 되었어요. 리더 생활 30여 년의 끝 무렵에 리더에 관한 책을 제일 많이 읽으며 더 좋은 리더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30여 년 동안 조직에 몸담은 리더지만 아빠라는 리더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힘들 때 친구가 되어준 책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다양한 방법으로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고민거리가 생기면 해결사 책을 찾아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는 ‘족집게 독서’를 합니다. 각종 스트레스로 힐링이 필요할 때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긴 소설 1권을 쉼 없이 읽어대는 ‘끝장 독서’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날이 새기도 하죠. 책과 대화를 하면서 잠시 멈추는 곳에는 종이 귀를 접어 놓고 계속 읽습니다. 노트에 옮겨 적다 보면 감정의 흐름이 끊길 것 같아서죠. 이렇게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 몰입해서 가다 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의 독들도 어느새 중화되어 갑니다.
완독을 한 후에는 접어 놓았던 부분만 다시 읽으며 밑줄을 치거나 SNS 독서 계정에 기록해 많은 사람들과 공유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안의 나쁜 감정은 정리하고 그 공간에 책 속의 좋은 장면과 글귀로 채워 넣습니다.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둬도 그 책이 머리에 옮겨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무실 책상 위에 두 권의 책이 제목을 자랑하듯 놓여 있습니다.
‘Reboot’와 ‘리더의 반성문’이죠. 물론 이 책은 완독을 한 책들입니다. 이 책을 바라보며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 리더로서의 자세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Reboot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눈앞에 놓인 책 표지의 제목이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게 하고 있어요. 아직 책 읽기가 쉽지 않다면 제목이 좋은 책을 골라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생활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봅니다. 책 제목이 자기의 생각을 이끌어 주는 것만으로도 책은 제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니까요.
책 읽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세종대왕처럼 ‘백독백습’(백 번 읽고 백 번 베껴 쓰기) 하거나 정조 왕처럼 두 번씩 보던지 자기만의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때로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기도 하고요. 독서의 이유에 따라 읽는 방법도 달리하죠. 이렇게 서서히 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책을 읽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해야 할 이유,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할 이유,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사랑할 이유를 만나게 되죠. 이것이 우리가 책과 친구를 맺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도 책이 좋은 친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백악관에서 8년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으며 독서는 나 자신을 안정시켜 주는 특별한 힘이었다.” 오바마의 말을 내 삶에 비추어 고쳐서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쓰나미가 몰려오던 10년의 세월을 버틴 비결은 독서였다.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었으며 책은 나 자신을 위로해 주고 안정시켜 주는 특별한 힘을 가진 친구였다.” 나의 절친인 책이 나를 치유시키고 생존시켜 성장을 이끌어 주고 있었다. 고맙다. 나의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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