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패션쇼 무대에 섰다. 500여 명의 관객이 채워진 커다란 홀,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바람의 옷'이라는 주제 아래, 나는 음악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를 밟았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내 모습에 어색할 정도였다. 메이크업을 하고 나니 평상시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메이크업해주시는 분들은 좋아했다. 이 모습이 무대에 어울리는 모양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대 순서를 대기하는데 그동안의 준비 시간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은 국제 및 국가 행사에 무대를 세웠던 전문가의 지도 하에 이루어졌다. 얼마나 영광인가? 전문 모델들도 이런 분의 지도를 받고 무대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2주간의 치열한 연습. 그 누구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직장을 마친 후 2시간씩 연습했다. 그중 1시간은 스트레칭을 했다. 평소 사용하지 않던 근육들을 움직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때로는 극한의 피로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버텼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움직임들이 점차 나의 것이 되어 갔고,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습은 기본자세와 스텝의 반복이었다. 패션쇼 모델들의 걸음걸이가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 배우면서 그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바른 자세로 서기 연습을 할 때는 온몸에 힘을 주니 땀이 몽글몽글 나고 근육에 힘을 준 다리에는 쥐가 나려고까지 했다. 이때 충격적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20대 건장한 젊은이들을 자세 연습을 시킨 적이 있었는데 1명이 쓰러졌다는 것이다. 온몸에 힘을 주고 10분, 20분 서 있는 연습을 하다가 현기증이 나서 쓰러진 것이었다. 평소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훈련을 하는 젊은이였다. 그만큼 이 자세 연습을 제대로 하면 힘들다는 것이었다. 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연습시켰을 때는 평소에 허리 아파하던 분이 건강해졌다는 사례도 이야기해 주었다. 평소 바른 자세 연습을 하고 바른 자세로 활동하면 외적 자세도 멋있게 보이고 건강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이러한 도전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역할이 정해지고 본격적인 동작 연습이 시작되면서, 포기할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음악 감각이 없는 나에게 음악에 맞춰 동작을 일치시키는 것은 큰 어려움이었다. 일정 간격으로 숫자를 세며 동작을 만들어 갔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움직임들이 점차 나의 것이 되어 갔고,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패션쇼라는 새로운 세계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패션쇼에서 입을 옷을 처음 피팅하는 날, 정말 놀랬다. 진짜 '바람의 옷'이었다. 가벼운 원단은 살짝만 움직여도 흔들렸고, 맨 몸에 착용해야 한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랬다. 프로 모델들이 그런 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순간까지 왔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마지막 연습일에 문제가 발생했다. 함께하는 모델의 옷이 너무 길어 자주 밟힌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바꿔 입어 보기로 했다. 키는 내가 더 작았는데 그 옷을 입게 되었다. 나에게도 옷은 길었다. 이제는 내가 옷을 밟게 되었다. 시간이 없어 다시 바꿀 수 없었고, 나는 옷을 밟지 않기 위해 스텝 요령 연습에 집중했다. 완벽히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무대에 서야 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드디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무대에 섰다. '바람의 옷'이라는 주제 아래, 나는 음악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를 밟았다. 그 순간, 나는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스텝과 팔동작을 조화롭게 연결했다.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의 옷은 바람에 휘날리듯 가볍고 자유로웠다. 이는 마치 바람이 옷을 감싸 안고 춤을 추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옷이 살짝살짝 밟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마다 긴장감이 쌓여갔다. ‘잘 마쳐야 되는데’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긴장한 나머지 연습했던 동작의 일부를 놓쳤다. 다행인 것은 옆에 함께 동작을 맞춰야 하는 모델도 동작을 놓쳤는지 나와 동일한 자세로 있었다. 그래서 안무에 실수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첫 패션쇼는 마무리되었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무대 위를 가득 메웠다. 그들의 환호는 내가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찬사였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나는 단지 패션쇼 모델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처음이자 특별했던 그 경험은 나에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난생처음 패션쇼'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단순히 패션쇼에 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나에게 있어, 이는 한계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이었다. 처음으로 무대에 선 그 순간, 나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생각지도 못한 자신감을 얻었다. 난생처음의 패션쇼는 낯설음 너머의 내 삶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처럼 (0) | 2024.02.20 |
---|---|
때론 돈키호테처럼 (0) | 2024.02.15 |
내 안의 재능 발견: 오늘은 건축가가 되어볼까? (0) | 2024.02.13 |
행복을 가져오는 것: 나 홀로 여행의 맛 (0) | 2024.02.12 |
자기 돌봄: 글쓰기 (0) | 2024.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