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들어 볼까요?”
아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새 집인데...”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문 설치 공사를 한다니 새 집이 엉망이 될까 걱정이 된 것입니다. 바로 포기했습니다. 문 없는 복층에 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딸의 말에 직접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2021년, 2022년은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흉내 내보는 정도였지만요. 안동으로 근무지를 옮겨서 새로 생활할 터전이 숲 속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방 4칸짜리 집 한 채와 잔디밭이 있는 정원, 조그만 텃밭과 화단, 무엇보다 아름드리 벚나무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벚나무 아래 멋진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아름드리 벚나무가 선물한 그늘과 벚꽃에 매료되어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 만들었던 쉼터. 무성한 잎 아래서 책 읽고 사색하며 꽃이 만발하면 벚꽃축제를 열어서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혼자만의 공간이자 모두의 공간이 된 벚나무 아래 쉼터. 다음 누군가 이곳에 살면서 더 많이 누리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남겨 놓고 갈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의 미소가 찾아오곤 합니다. 코로나로 발걸음이 묶여있을 때 이렇게 나의 마음은 한계선 밖으로 여행 중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유여행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어느 날 딸이 흔들 그네 의자가 베란다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서인지 카페나 식당, 유원지 등에 갈 때면 흔들 그네 의자가 있는지 두리번거리게 되었습니다. 발견이라도 하게 되면 사진에 담아 두었다가 크기, 모양, 연결 부위 등을 비교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연구하고 나니 만들어 보고 싶어 졌습니다. 먼저 폐목재를 활용해서 시험 삼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럴싸하게 모양이 나왔고, 성인 두 명이 앉아도 안전했습니다. 물론 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요. 그래서 더 좋고 튼튼한 목재를 구하고 방부목과 부수 재료들을 사서 또 만들었습니다. 나름 완벽했습니다. 구매한 제품처럼. ‘별거 있어? 의자가 그네처럼 흔들리면 되는 거 아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흔들 그네 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을 본 아내 마음이 조금은 움직였을까요? 코로나 경제 위기 상황을 고려한 듯 전문가에게 맡기려던 딸 방문을 내게 맡겼습니다. “인건비 10만 원만 줘요” 계약에 성공했습니다. 막상 내가 하려니 부담감이 컸습니다. 각종 장비도 없었습니다. 문과 문틀은 전문 업체에서 구매한다지만 나머지 벽체는 직접 구상하고 설치해야 했습니다. 나름 설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길 수차례. ‘할 수 있을까?’ 의문의 공간이 커질수록 자신감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내뱉은 말인데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잘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착수. 문 제작 주문. 나의 이런 고민을 마당발이 알아차렸습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같이 만났습니다. 시공 전문가였죠. 이것저것 다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죠. 결국 해냈습니다. “아빠, 전문가가 한 것 같아!” 처음에는 잘하리라는 믿음이 없었던 아내도 말했습니다. “잘했네요” 그리고 곧바로 입금해 주었습니다. 인건비 10만 원.
이 일로 사랑하고 집중하면 낯선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생각하면 보이고 보이면 연구하고 연구하면 실체가 나옵니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의 꿈인 전원주택을 지어볼까요?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손수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 짓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자기가 살 집을 직접 지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커서이지 않을까요? 아직 그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잠시 빌려 쓰는 공간이지만 나의 흔적을 남기고 간다는 것이 기쁨입니다. 흔적을 남기는 자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극히 개인적이고 오래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작은 공간에 역사를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재능도 발견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고, 할 수 있는 것,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다른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낯설거나 우선순위에 밀려 보이지 않았고 볼 수 없어서 할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낯선 환경이 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하게끔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낯설음의 쓸모를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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