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0대 중반, 지금껏 혼자 여행해 본 경험이라고는 20대 중반에 딱 한 번 있었던 같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동해로 훌쩍 떠났던 것.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이유로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동해행 버스에 몸을 싣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를 잡고 항구 일대를 거닐다가 오징어 회 5000원어치를 샀어요. 처음에는 항구 방파제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먹으려고 했죠. 그런데 너무 처량하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니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계획을 바꿔 숙소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숙소에서 홀로 그 많던 오징어 회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장면을 회상하면서 이 글을 쓰는 순간, 웬일인지 웃음이 납니다. 그때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기분 따라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여행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요. 휴식과 힐링을 위해, 그리고 배움과 깨달음을 위해서.
결혼 후에는 직업상, 그리고 자녀교육문제로 가족들과 떨어져 6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휴가를 내서 집에 가거나 가족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이 오지 않는 날에는 혼자 있는 것이 조금 불편해서 일부러 할 일을 만들어 몸이 피곤할 정도로 바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은 편했으니까요. 고독과 외로움, 무료함과 쓸쓸함 등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온 지구촌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면서부터 나는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읽은 책을 SNS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여행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이었습니다. ‘7년 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었죠. 책 표지부터 마음에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책 표지에 적힌 글이 이 책의 모든 것인지 모릅니다. 그 책은 나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현명한 사람인가?’ 그리고 내가 고민하지 않도록 힌트를 주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 이 기준에 의하면 현재의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3년 후의 진로를 놓고 답이 잘 보이지 않아서 방황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글을 보는 순간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니 그럴듯했어요.
‘혼자 여행이라. 흥미로운데’ 그런데 그 밑에 작은 글씨들을 보고서 ‘아이코, 이렇게는 못하겠다. 내 현실과는 맞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년간 250회 이상 비행기를 타고, 1000번 이상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고,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낸 오스트리아 최고의 여행 칼럼니스트의 인생을 바꾸는 여행의 기술 25’
생각만 해도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내 마음의 흐름이 역전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안경을 써야만이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글씨가 흐름을 바꾸어 놓았죠. ‘여행은 우리를 용기 있게 만든다. 누가 내 짐을 대신 들어주기를 바라지 않고,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쓸지에 집중하게 만들며, 두려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두려운 것을 시도하게 만든다.’
여행 가방 사진과 함께 작은 글씨들에 담아 놓은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여행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나였지만, 나 홀로 여행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여행도 가족, 친구, 동료 등과 함께하는 그룹 여행이 전부였습니다. 분위기에 따라 몰려다니고, 사진 찍고, 함께 먹고 대화하며 즐거운 추억 만들기에 바쁜 여행들이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를 알려 준 책이 고마웠습니다. 이런 고마움을 느끼며 책 뒤표지를 보았습니다. 더 충격이었어요. ‘만약 당신이 힘들고 외롭다면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인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웃음의 탈을 쓰고 있어서 모를 줄 알았던 힘들고 외로움이 가득한 내 마음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책의 저자는 내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톨스토이는 ‘우리가 죽음을 통해 배우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여행으로 바꾸어 보면 ‘우리가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삶’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안동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컸습니다. 언제 안동을 또 올 수 있을까. 1년을 있으면서 내가 보고 겪은 안동은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느낌 없는 곳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안전 수칙을 준수하면서 혼자 여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여건상 당일 코스로 선택했습니다.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다녀왔던 도산서원, 퇴계 이황이 공부했다는 청량산, 하회 마을, 징비록을 썼던 옥연정사, 서애 류성룡의 마지막 거처지였던 서미마을, 안동댐 주변의 월영교와 전통 리조트 ‘구름에’, 경북 독립기념관, 선비 순례길 등 1일 1코스 5시간 정도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함께 아닌 혼자, 그리고 빠르게 아닌 느리게 여행해야 보고 느낄 수 있는 맛의 여행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여행의 맛을 혼자 걸으며 마음껏 느꼈습니다. 물론, 더 많이 느끼기 위해 사전에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혼자 여행을 몇 번 하다 보니 진한 사골국 맛처럼 다시 찾는 여행 기술이 되었습니다. 몇 번에 걸친 혼자 여행을 하고서 다시 질문에 답해 보려고 했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내 마음에서 답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나와 마주한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때 행복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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